#A씨(40대)는 최근 서울 송파구에 있는 전용면적 109㎡짜리 아파트를 한 채 매입했다. 매매계약은 17억5000만원에 했지만, 정작 A씨가 매도인에게 입금한 돈은 7억원이었다. 매도인이 아파트를 판 뒤에도 세입자로 계속 살기로 했기 때문이다. 즉, 계약서상의 매매가격과 실제 거래가격의 차액인 10억5000만원이 전세보증금이 된 것이다. 시세보다 1억원 이상 비쌌지만 거래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매도인은 고등학생인 자녀가 전학을 원하지 않아 졸업 때까지 거주할 곳이 필요했고, A씨는 현금이 부족했던지라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최근 대출 규제가 강화되는 등의 영향으로 집주인이 세입자가 되는 전세 거래가 늘고 있다. 소유주가 세입자로 들어가 사는 조건으로 시세 대비 높은 수준의 전세가격을 설정한 뒤 매매계약과 전세계약을 동시에 체결해 초기 주택 마련 비용을 줄이는 일종의 '갭투자'다.
주인 전세 거래는 주택담보대출이 불가능한 15억원을 초과하는 아파트가 밀집된 서울 강남·마포·용산구 등에서 주로 이뤄지고 있다. 최근 '마포래미안푸르지오'에서 체결된 계약도 주인 전세 거래로 추정되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일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 59㎡는 보증금 9억5000만원에 전세 계약을 마쳤다. 직전 최고가보다 5000만원 높은 전세 신고가다. 현재 이 아파트는 8억원대 중반으로 시세가 형성돼 있다.
이에 부동산업계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매매가 대비 전세가의 비율을 의미하는 전세가율이 올라가면서 갭투자가 성행할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종합부동산포털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82개 시 가운데 총 26곳의 전세가율이 70%를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경기(이천) 1곳을 비롯해 충북(충주·청주) 2곳, 충남(당진·아산 등) 4곳, 경북(경주·구미·포항·경산 등) 9곳, 경남(진주·통영 등) 3곳, 전북(익산·전주 등) 3곳, 전남(목포·나주) 2곳, 강원(춘천·삼척) 2곳 등이다. 전국 평균 전세가율은 56.0%로 나타났다.
특히 임대차법(전월세신고제·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제) 시행 이후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 임대차법에 의거해 기존 전세 물건은 보증금을 쉽게 올릴 수 없지만, 주전 거래 물건은 신규 계약이기에 높아진 시세에 맞는 보증금을 받을 수 있어 주인 전세 거래 매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인 전세 거래가 실거래가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실수요자의 부담을 키우는 악순환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세를 피하기 위한 다주택자거 급하게 매물을 내놓으면 가격을 낮춰야 하는데 주인 전세 거래 방식을 통해 오히려 집값을 올리는 등 비정상적인 거래 형태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전셋값이 하락기에 접어들 경우 집주인이 보증금을 마련하는 것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전세는 매도자가 매수인에게 보증금이라는 돈을 빌려주는 일종의 사금융"이라며 "무리한 규제가 만들어낸 비정상적인 거래 형태가 전반적인 주거 불안을 부채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