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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프리미엄] 아랍의 정치적 리스크, 고령의 국왕과 국가 지도자 2018.04.13
관리자  
휠체어에 앉아 손을 흔드는 압델 부테플리카 알제리 대통령. /자료=AP
▲ 휠체어에 앉아 손을 흔드는 압델 부테플리카 알제리 대통령. /자료=AP

[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116] 압델 부테플리카 알제리 대통령은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불린다. '죽어 있으면서 살아 있고 살아 있으면서 죽어 있다'는 표현에 빗댄 것이다. 최근에만 두 번의 뇌졸중을 겪은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휠체어를 타고 공식석상에 등장한다. 지난해 10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와 회동 당시 허공을 보고 알 수 없는 말을 얼버무려 국제적 망신을 샀다. 그는 올해로 만 81세다.

아랍권 통치자의 고령화는 알제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아랍 18개국 중 지도자 나이가 70세 이상인 곳이 30% 이상이다.

튀니지의 베지 카이드 에셉시 대통령은 튀니지가 독립하기도 전인 1926년에 출생했다. 튀니지공화국의 건국일이 1956년임을 감안하면 에셉시 대통령이 '아버지뻘'쯤 되는 셈이다. 이 밖에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과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은 83세, 카보스 빈 사이드 알 사이드 오만 국왕은 78세다. 아랍에미리트(UAE)의 셰이크 칼리파 빈 자이드 알 나하얀 대통령은 70세이지만 아랍권 통치자 평균인 72세에 비하면 비교적 어린 형편이다.

왕조가 대부분인 아랍권에서 고령의 통치자는 과거에도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시민의식 성장으로 종신정치에 대한 반감도 커지면서 이들의 나이가 주목받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아랍권의 중위 연령은 25세로 선진국에 비해 10년 이상 낮다"며 "개혁적인 젊은이들이 부패와 종신통치를 일삼는 노인 지도자에 대해 점점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2010년 중동 전역을 휩쓸었던 '아랍의 봄'은 노쇠한 스트롱맨들의 입지를 더욱 약화시키고 있다. 아랍의 봄은 집권세력의 부정부패와 빈곤, 청년실업 등이 촉발한 민주화 시위다. 아랍권 전역으로 퍼지면서 튀니지, 예멘, 이집트, 리비아의 독재정권을 잇달아 무너뜨렸다. 권위주의에 맞서 이긴 경험이 있는 아랍 국민들이 언제라도 무능한 지도자들에게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언제 쓰러질지도 모르면서 권력을 놓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부족국가인 아랍에서 내전 등의 위기는 상존한다. 수년째 암투병을 하고 있는 카보스 오만 국왕도 침실에 틀어박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대통령은 2014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이복동생이 대신해서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UAE를 방문했을 때도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왕세제가 정상회담 및 의전을 전담해 실권자임을 각인시켰다.

건강 이상설을 불식하기 위해 '국민 소통'에 나섰다가 망신을 당한 사례도 있다. 82세인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2014년 건강 이상설이 돌자 팔레스타인 라말라에 있는 한 슈퍼마켓을 전격 방문했다. 외신들은 "밖으로 안 나오기로 유명한 아바스 수반이 촬영기자까지 대동하고 나온 모습이 촌극 같다"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심장수술, 암투병, 고혈압 전력이 있는 그는 병원이 있는 요르단 암만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이들의 건강문제에는 필연적으로 국정불안을 수반한다. 사우디를 제외하고는 후계가 불명확한 국가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오만 국왕은 자신의 왕궁에 후계자를 적은 봉투를 보관하고 있다. 그가 사망할 때까지 아무도 봉투를 열어볼 수 없어 후계를 둘러싼 온갖 추측이 난무한다. 팔레스타인의 경우 아바스 수반이 갑자기 사망하면 중동에 극심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는 양측을 넘어 전 세계가 개입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아랍의 봄을 경험한 '똑똑한' 국민들이 달가워할 리 없다.
 

유엔서 연설하는 무함마브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자료=AP
▲ 유엔서 연설하는 무함마브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자료=AP


반면 아랍권 수장으로 통하는 사우디는 발 빠른 변신을 꾀하고 있다. 만 32세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각종 개혁정책으로 인기를 끌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책봉된 빈 살만 왕세자는 노쇠한 아버지를 대신해 사우디를 이끌어가고 있다. 조만간 '양위'가 예상된다. 늙은 아랍권 정치권 내에서 젊은 지도자의 출현은 아랍의 봄만큼 충격파로 다가올 전망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해 11월 왕족과 기업인 수백 명을 체포하고 재산을 압류하는 등 철권 통치자의 면모를 보이고 있지만, 국민들은 오히려 부정부패 근절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성의 자동차 운전 허용, 상업 영화관을 개장 등을 골자로 한 빈 살만의 근대화 개혁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입력 : 2018.04.12 [박의명 국제부 기자]